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Sister 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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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에는 본질과 비본질이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본질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에 촛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을 놓치고 대신 비본질적인 것에 매달리다 보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본질과 비본질적인 것들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는
서로 충돌하게 만들고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목적을 이루시고자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지만,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반대로
비본질적인 것들에 집착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종교적인 규례와 장로들의 유전, 종교적인 관습에 집중하느라
진정한 본질이 되시는 구원자이신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들은 병든자와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그것에서 놓임받고 죄인이 구원받는 일에는
관심 없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복음 4:18,19)
여러분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신학의 방향에 따라 신앙의 본질을 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누가복음 18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에서 신앙의 본질을 찾아보았습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 비유에서는 자기의 의를 자랑하는 바리새인과 자신의 죄를 통회하는 세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행위를 내세운 바리새인이 아니라,
가슴을 치며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한 세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9-14)
이 말씀을 보면서 제가 생각하는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에서 시작한다는것입니다.
비본질적인 종교행위가 나로 하여금 죄와는 상관이 없는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못한다는것을 알게 되면 갈등과 고민도 생길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
신앙의 본질을 알아가는 기쁨은 그것보다 더욱 클 것입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3:10,23.24 )
*예수님 외에는
제가 생각하는 더 중요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유일한 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은 다른 구원의 길은 없다고 말씀에 기록 되어있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다른 어떤 이에게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4:12 쉬운성경)
하나님은 인정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고
다른 구원의 길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불완전한 주장과 이론이 될 것입니다.
다윗과 밧세바
다윗왕은 수많은 시편을 기록하였고 늘 하나님과 가까이 하며 기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다윗이 무너져 내려버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사람이 되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윗과 밧세바 사건’입니다.
우리가 다윗의 생애를 이해하려면 골리앗을 무찌른 사건보다, 사울왕의 핍박을 견디고 왕이 되는 사건과 수많은 전쟁의 승리에 대한 이야기보다 이 사건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다윗은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하 11장의 말씀을 보면 다윗은 이 사건을 통해 간음죄와 그에게 충성하던 신하 우리아를
죽게 만드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나단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책망을 들은 다윗은 자기의 죄를 자복합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그러나 왕이 원수들에게 여호와를 경멸하고
모독할 기회를 주었으므로 왕의 아들이 죽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하 12:13,14)
이 사건 이후 다윗은 시편 51편을 기록하였습니다.
“오 하나님, 주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내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나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내 모든 잘못을 없애 주소서.
내 모든 죄악들을 다 씻으시고 내 모든 죄들을 깨끗하게 해 주소서.
내가 저지른 잘못들을 알고 있으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죄투성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임신했을 때부터 나는 죄인이었습니다.
오 하나님,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만들어 주시고
내 안에 올바른 마음을 새롭게 해 주소서.”(시편 51:1-3,3,10 쉬운성경)
다윗은 이 사건만을 단순히 회개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질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타락한 존재임을 깨닫고
존재론적 회개를 한 것을 시편 51편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편 51:5)"
그는 이 사실을 고백하며 언제든지 죄를 지을수 있는 자신의 깊은 죄성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편 51:12)
다윗은 자신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긍휼하심으로
새롭게 되기를 구했던 것입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편 51:7)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을 가리우지 말고 주님께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연약한 우리,
깨어지고 넘어지기 쉬운 우리,
세상속에 살면서 고난과 걱정거리로 고달픈 우리,
그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 엎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시고 돌보시는
그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찬송하게 하시고
새롭게 해주시기를 기도하는 오늘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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