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Sister Mary

- 1 day ago
- 2 min read
Updated: 5 hours ago
만약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 앞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너희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말씀하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대답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진정한 소원이 무엇입니까,
그 소원이 우리가 가진 힘이나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도 할 것도 없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이나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난이
인생 가운데 때때로 생겨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는 예수님께서 눈먼 자들을 고치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여리고를 지나실 때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길 가에 있던 맹인 두 사람이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사람들이 그들을 꾸짖으며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욱 크게 소리질렀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가던 길을 멈추시더니 그 사람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길 원하느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주님, 눈을 뜨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마태복음 20:30,34)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그들의 그 간절한 외침속에 드리워져 있는 깊은 슬픔과 고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동안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겠습니까,,,
이런 깊은 좌절과 고난 가운데 가슴을 쥐어짜는 간절한 외침의 기도를 해 보신 분들은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
여러분은 완전한 사랑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사랑’ (Love) 이라는 말은 모두가 추구하고 좋아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도 조건을 내세우고,
자녀를 사랑하고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조건을 걸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사랑은 완전한 사랑도 아니고 영원한 사랑도 아닐 것입니다.
저는 사랑이라는 말보다 불쌍히 여긴다는 말에 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제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깨달은 것입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
아이들이 실수했을 때
아이들이 못난 일을 했을 때
아이들이 실망하고 실패하고 낙심하고 있을 때
이유를 묻기 전에 그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파하며 손잡아 일으켜 줄 수 있는 것은
사랑보다 더 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신 사람들
누군가 저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묻는다면
저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고 오천명을 배불리 먹이실 때
그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음을 불쌍히 여기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마가복음 6:34)
또한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를 불쌍히 여기사 깨끗하게 치료해 주셨습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마가복음 1:40-42)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찾아 나온 많은 무리들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온갖 질병과 아픔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고,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로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백성들의 선한 목자가 아니라 대우를 받는 것과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선한 목자를 찾아보기가 힘들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치고 기운이 빠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 것은
주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 나아가
우리의 아픔과 연약함을 내어놓고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우리의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우리의 교회와 나라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간절히 외치며 기도하는 오늘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 쓰임받았던
작은 소년과 제자들의 용기와 순종하는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