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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러분은 좋은 의원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이 병이 들어 의원을 찾아 왔으나

의원이 병든 자를 긍휼히 여기지도 않고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돌려 보낸다면  

그 사람은 병의 원인도 모른 채 고침을 받지 못하고 돌아갈 것입니다 .

그러나 좋은 의원은 그를 불쌍히 여기며 그 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어 알려주며 치료하고

새생명을 가지고 살아갈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좋은 의원은 누구 입니까,,,

 

예수님이 오신 것은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세리 마태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마태는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에서 예수님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세리들과 더불어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너희 선생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먹고 마시느냐?"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누가복음 5:31,32 개역한글)

 

그렇습니다, 우리의 좋은 의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성경말씀으로 양육 하는것은 병든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안정이나 감정적 위로를 주는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고난의 신비를 깨달아 예수 안에서 진정한 쉼을 얻으며

그분을 따라가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제자와 선생된 자들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변화산의 제자들

누가복음 9장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 가셨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도하시는 동안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변하고 그의 옷이 희어져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그때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그들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졸고 있던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정신을 차려 보니 예수님의 영광의 광채가 보이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두 사람이 떠나려 하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누가복음 9:33)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본 베드로는 현실의 세상으로 내려가는 것보다

감격적인 그 곳에 계속 머물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음날 그들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 오셨습니다.

 

아마 우리 모두는 베드로처럼 이런 영광스럽고 감격스러운 자리에 계속 머물고 싶어 할 것입니다.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가서

또 다시 일상이 주는 문제들과 부대끼고 인간관계와 삶의 스트레스에 짓눌릴 것을 생각하면

현실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얻은 상처들을 아파하면서도 그 현실 속에서 살아내어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의 무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 세상을 이기며 지혜롭고 순결하게 살라고 하십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태복음 10:16)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들에게 귀신을 이기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병을 치료하라고 이들을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들꽃처럼

예수님께서 들에 핀 백합화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꽃들의 삶의 현장은 빈들이었습니다.

어쩌면 가시나무가 곁에서 찌르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바람이 불기도 하는 빈들이

그 꽃들의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돌보시고

꽃들은 빈들을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태복음 6:28-30, 33-34)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빈들에 피어 있는 들풀처럼 힘들고 외롭고 걱정이 많은 인생을 살아 갈지라도

염려하지 말고 이 말씀을 붙잡게 되시면 좋겠습니다.

내일 일은 주님께 맡기고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서로 어울려 아름답게 피어 있는 들꽃처럼

마음에 여유와 따뜻함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새찬송가 442. 저 장미꽃위에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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