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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심과 신앙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만나는 질병과 죽음,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경제적인 문제

그리고 재난으로 인한 불안과 고통을 해결하고 극복하기 위해 무엇인가 의지할 대상을 찾아서

믿고 싶어하는 것을 ‘종교심’ 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심층구조 속에 있는 이러한 ‘종교심’ 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무엇이라도

믿을 상대를 찾게 되었고 그 결과 인류 역사속에서 수많은 종교들이 생겨나게 된것입니다.

이러한 종교심에 대해 개신교 개혁신학자 칼빈은 신에 대한 의식 곧 ‘신의식’ (Sensus divinitatis)

또는 종교의 씨앗 (semen religionis) 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저는 이번 여름에 기독교 선교 인류학을 공부 하면서 ‘종교심’ 이라는 주제와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는 말을 연결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입니다.


왜냐하면 신과 사람의 인격적인 만남을 위해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성육신 (Incarnation)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마태복음 1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일곱개의 떡과 두마리의 물고기로 사천명을 먹이신

이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의 산 위에 올라 앉으시니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다리를 저는 사람, 걷지 못하는 사람, 보지 못하는 사람, 말 못하는 사람,

그 밖에 많은 병자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들은 병자들을 예수님의 발 앞에 두었고,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바라보시고 먼저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마태복음 15:32)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준비해온 음식이 떨어져가고 배고파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깊은 사랑으로 이적을 베푸셔서 배불리 먹이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마태복음 15장을 보면서

그들의 병든 몸을 치료하시고 그들의 배고픔과 피곤함을 미리 아시고 먹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말씀속에서 살아나와 저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냄새나고 피곤하며 가난한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끊임없이 이끌어 주시고 함께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쏟아지는 소나기와 같이 제 마음을 두드려서 목이 매이고 눈물이 났습니다.

인생을 산다는 것이 왜 이리 힘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불안과 초조함은 왜 그렇게 자주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왜 이리 끈질기게 우리를 힘들게 하지는 모르겠습니다.

오늘 저는 예수님께서 앉아 계시던 갈릴리 호숫가로 나가 그 발 아래 앉아 보았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율법과

고행과

고생의 짐을 우리에게 지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메마른 광야에 식탁을 베푸셔서 먹이시고

쉬게 해주시는 주님의 발 아래에 앉아

오늘은 그저 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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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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