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을 가진 그루터기
- Sister Mary

- Apr 2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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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가뭄이 와도 걱정이 없는 형통한 삶을 살게 해달라고 구합니다.
그러나 가지도 없고 줄기도 없는 그루터기 같은 인생을 살게 해달라고 구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루터기는 나무를 베고 남은 밑동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축복이 넘쳐나는 푸른 나무 같은 시절이 있듯이
고난과 어려움이 찾아와 그루터기가 되는 때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상상하고 기대하는 ‘복’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쓰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루터기와 같은 어려움을 당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놓은것을 볼 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좋아하는 ‘복’에 대한 개념과 기대를
재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대의 정신이 우리에게 심어준 ‘복’이라는 개념과 동떨어진 사건과 일들이
우리에게 생기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끄러워하고 쉽게 낙심에 빠져버립니다.
사업과 직장에서 실패를 하고, 자녀에게 어려움이 생기고, 사고가 생기고,
예상치 못했던 질병이 찾아올 때 그것을 불행이라고 쉽게 말해 버리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태도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정신이 우리에게 심어준 ‘복’이라는 것이
학벌과 집안이 높아지고
부자가 되고 강자가 되어 약자에 대해 힘을 가지는 것이라면
그 복은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과는 너무 거리가 먼 것입니다.
저는 그루터기에 대해 묵상하다가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한 여인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 한 명을 끌고 와서
모인 사람들의 앞에 세우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 여인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들을 돌로 쳐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고소할 구실을 얻기 위해 이렇게 시험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지은 적이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둘씩 떠나가고
예수님과 거기 홀로 서 있는 여인만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켜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아무도 너를 정죄하지 않았느냐?"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주님,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이 이런 부끄러운 상황에 처하기전에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의 형편은 죽은 사람같이 되어
비참한 모습으로 예수님과 군중들 앞에 홀로 서 있었습니다.
가지도 없고 줄기도 없고 잎사귀도 다 잘려버린 비참한 모습으로
밑동만 남은 그루터기가 되어
죽음을 대면하고 있는 그녀에게 주님은 새생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새순과 잎사귀를 다시 내기 까지
수치와 부끄러움의 기억으로 힘든 시간을 지내겠지만
예수님을 만난 그녀는
죽음에서 벗어나
새순과 새줄기를 다시 낼 수 있는 소망을 가진 그루터기가 된 것입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모든 상황이 어렵게 되어
가지도 없어지고 잎사귀도 다 잘려버린 그루터기가 되셨어도
절대로 인생을 포기 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고통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시고
새순과 잎사귀를 다시 내게 하실 것입니다.
"이 땅 백성의 십분의 일이 남는다고 해도 그 땅은 다시 황무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잘리더라도 그루터기는 남는 것같이,
거룩한 자손들이 그루터기가 되어 거기에서 다시 싹이 틀 것이다"(이사야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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