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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관에 앉아있는 마태

Updated: Nov 10, 2024


인생을 살면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기 힘든 것은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며

또한  도움을 구하려 해도 도와주는 상대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고 냉정한 현실 때문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눈에 보이지도 않고 우리와  일상속에 같이 살아가는 존재도 아닌

신에게 도움을 구한다는 것은 허공을 향한 메아리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는 현실과 한계 앞에 설 때

사람들은 신을 찾게 됩니다.

더구나 어떤 사람도 넘어갈 수 없는 인간의 한계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사망의 권세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누구에게나 주어진 사실이기에

죽음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종교가 나뉘어 지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부활신앙’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도 사망의 권세를 이길 자가 없습니다. 

죽은 자는 생각을 할 수도 없고 움직이지도 못하며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이 있습니다.

 

이러한 부활의 중심에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을 부활생명으로 일으키실 것을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선포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

이제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이라는 한계는 ‘부활신앙’으로 해결되었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고달픈 현실은

우리에게 또 다른 크고 작은 한계를 안겨다 줍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사랑과 용서의 한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실패와 낙심,

육신의 질병과 정신적인 압박과 불안,

거짓과 의심 그리고 갈등과 분쟁의 해결할 방법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세관에 앉아있는 마태

마태복음 9장에는 자신의 인생을 재물과 직업에 걸어보았던 한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세리 마태입니다.

마태는  세리라는 직업을 통해 재물을 모으면서 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을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만났던 인생의 한계를 재물과 돈으로 해결해 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멸시와 공동체의 따돌림은 견딜 각오를 하고 세리라는 직업을 택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외롭고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익숙해진 현실의 한계를 넘어가지 못하고

여전히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예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마태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빛과 말씀은

마태의 한계를 무너뜨리시고  그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자 마태는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였습니다.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와서,

예수님과 제자들로 더불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어째서 너희 선생님은 세리들과 죄인들하고 함께 어울려 식사를 하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9-13)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려고 애써보지만 우리의 사랑은 이기적입니다.

우리는 용서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용서라는 긴 여행은 힘이 듭니다.

또한 직장과 사업문제, 자녀문제, 건강문제,

재난과 사건들은 우리의 마음에 걱정이 가득하게 만듭니다.

 

오늘 우리가

이러한 모든 어려움들을 예수님께 맡기는 기도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의 기도를 우리 주님께서 들으셔서

새로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며 위로받게 되시기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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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짐 맡은 우리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근심 무거운짐 우리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없는 고로 복을 받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줄을 모를까 " (새찬송가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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