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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근심에 빠진 아브라함

누구든지 성경을 읽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나 표현들이  있을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거룩하고 완전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 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고 저작한 것이 성경 말씀이며

인간의 수준에 맞추어서 하나님께 속한 것과 하나님의 뜻에 대해 표현한 것이 기록된 성경이므로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아무도 성경의 모든 예언을 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받아서 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20,21 쉬운성경)

 

저는 성경을 읽을 때 이해가 안되고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없는 부분이

누구보다 많았던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가복음을 읽다가 흰색을 표현하는 구절을 보고

땅에 속한 표현으로 하늘에 속한 것을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제한적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러가지 단어와 말로 흰색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흰색은

인간의 어떤 언어로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단순히 색깔에 대한 표현도 그러하거늘

더 깊고 높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를

사람이 어찌 온전히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무한하신 신의 존재 앞에,

창조주 이신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마가복음 9:2-4)

 

깊은 근심에 빠진 아브라함

창세기 21장에는 아브라함이 그가 사랑하던 아들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어 보내야 하는 상황이 생기자 깊은 근심에 빠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오랜 기다림 끝에 하나님의 언약하신 말씀대로 얻은 아들

이삭의 젖을 뗀 기념으로 베푼 잔치에서

이스마엘이 이삭을 조롱한 것이 발단이 되어 생긴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사라의 부탁을 듣고

사라의 몸종 하갈에게서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깊은 근심에 빠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나 네 여종에 대하여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너에게 말한 대로 하여라. 

이삭을 통해서 난 사람이라야 네 후손으로 인정될 것이다. 

그리고 네 여종의 아들도 네가 낳은 자식이니

내가 그에게도 많은 후손을 주어 한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창세기 21:14)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이일로 심히 근심하고 괴로워했던 아브라함이

어찌 떡과 물 한 가죽부대만 들려서 그들을 걸어서 내 보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도울 수 있는 사람이나 타고 갈 짐승을 제공해줄 수 있을 만한 재력이 있었던

아브라함이 왜 그랬을까, 광야를 건너갈 충분한 양식을 실어서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이것은 무슨 상황인가 했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감정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뜻하신 대로 순종한 것임을

계속 되는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가죽 부대에 물이 떨어지자 

하갈은 아들을 떨기나무 아래에 두고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 가서 주저앉아 

자식이 죽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며 목놓아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이의 우는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갈을 불러 말하였습니다.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저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들으셨다”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창세기 21:19)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광야를 걸어가는 그들과 함께 하시고 도움을 베풀어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아니고

타고갈 짐승과 먹을 것도 아니며

도와주는 어떤 사람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그들을 도우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고

그것을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것을 알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셨다는 것을 깨달음으로

‘떡과 물 한 가죽부대’에 대한 저의 고민은 풀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우는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고

하늘의 샘물을 마시게 하십니다.

이것을 세상이 주는 도움과 비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고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세상의 힘과 권세의 도움을 더 좋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광야를 걸어갈 때는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난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광야를 걸어가는 아픔가운데 발견한 은혜의 샘물은

그것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진리의 샘물이요 생명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낙심하게 하고

눈물나게 하는 상황들이 생길지라도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광야를 지나갈 때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나도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되지 않는 것 같은 상황이 생길지라도

두려워 하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마시고 소생할 샘물을 보여주시고  

우리를 살리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께 소리 높여 기도하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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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 오라 이곳에 좋은 샘 흐르도다 힘쓰고 애씀이 없을지라도 이 샘에 오면 다 마시겠네” (새찬송가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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