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성령이 감싸시니
- Sister Mary

- 13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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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불가능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높은 산과 같은 절망을 만날 때가 있고,
내 힘으로 건너갈 수 없는 바다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어떤 분들은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높은 산과 건널 수 없는 바다 앞에서
절망과 포기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그 장애물을 넘어갈 방법과 길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문제의 담이 너무 견고해 보이고 깊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의 차이, 신념과 종교의 차이, 문화와 사회 환경의 차이,
그리고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우선순위의 차이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소통이 되지 않고 대화가 단절되기 시작하면
서로가 방어벽을 치기 시작하고 그것을 해결하지 않고 계속 그대로 둔다면
우리의 관계들을 하나씩 둘씩 단절되고 말 것입니다.
담을 쌓아가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담을 쌓아가는 우리를 때때로 광야로 이끌어 가시기도 합니다.
우리 중에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광야로 이끌어 가신 것을 경험하신 분들이 계실것입니다.
광야는 벽을 쌓지도 못하고 담을 쌍아 경계를 만들지도 못하는 곳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부지런히 쌓아 올렸던 욕심과 욕망의 탑, 부와 명예, 나의 체면과 자존심,
그리고 남들 앞에서 자랑하고 잘난 체 할 수있는 것들 모두가 광야 에서는 무의미 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끝없이 펼쳐진 메마른 광야 가운데서 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고 바라는 것이겠지요,,,
그 때에 성령이 감싸시니
저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높은 산과 깊은 바다 앞에서 혼자 서 있을 때가 가끔 있습니다.
정신적인 허탈과 곤핍함으로, 육신의 고달픔과 고통으로, 영적인 갈급함으로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포기하지 않고 넘어야 할 산이요 건너야 할 바다이기에 그 문제들을 두고 기도하다가
읽은 역대상 12장의 말씀이 저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베냐민과 유다 자손 중에서 요새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오매
다윗이 나가서 맞아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평화로이 내게 와서 나를 돕고자 하면 내 마음이 너희 마음과 하나가 되려니와
만일 너희가 나를 속여 내 대적에게 넘기고자 하면 내 손에 불의함이 없으니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감찰하시고 책망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매
그 때에 성령이 삼십 명의 우두머리 아마새를 감싸시니
이르되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으리니
원하건대 평안하소서 당신도 평안하고 당신을 돕는 자에게도 평안이 있을지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 한지라
다윗이 그들을 받아들여 군대 지휘관을 삼았더라” (역대상 12:16-18)
이 말씀은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 도망 다닌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
다윗이 망명해서 거주하고 있는 시글락으로 다윗을 찾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전쟁터에서 다윗을 도운 용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돕는 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자와 고난을 함께 하기 위해
다윗을 찾아온 용사들이었습니다.
다윗은 그들의 진심을 알지 못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이 좋은 뜻으로 다윗을 도우러 왔다면 환영하지만,
아무 잘못이 없는 다윗을 원수들에게 넘겨 주러 왔다면
하나님께서 이 일을 감찰하시고 책망하시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30명 용장의 대장인 아마새를 감동시키시자
아마새가 한 말이 본문 역대상 12:1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어려운 처지 가운데 아마새와 다윗을 성령님이 감싸시니
그들의 마음에 의심과 두려움의 담이 허물어지고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결과를 이루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성령님께서 도우셔서 그 문제가 해결되는것을
성경말씀으로 보여주시니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의 첫걸음이요
문제해결의 끝자락이 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기도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게 하시고
우리 앞을 가로막는 높은 산이 낮아져 평지가 되게 하시고
우리 앞에 놓여진 깊은 바다를 갈라 주시고 마른 땅을 건너가게 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과 진리를 아는 것이 너무 귀해서 감격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하니 이제부터 내 힘으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높은 산과 바다와 같은 절망과 갈등을 앞에서
저는 성령의 도우심을 더욱 적극적으로 구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는지요,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2,3)
마르다야 마르다야
예수님과 제자들이 여행을 하다가 마을로 들어가시니 마르다라는 여인이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 들였습니다.
마르다는 나사로의 누이이고 마리아라는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해서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저 혼자 이 모든 접대를 하는데 제 동생이 저를 거들지 않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주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41,42)
이 말씀을 읽다가, 바쁘게 일하며 분주한 마르다에게 주님께서 ‘마르다야 마르다야’ 부르셨듯이 저의 이름도 부르는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마음이 분주하고 스트레스 많은 바쁜 하루를 살더라도
주님 발 아래 앉아 있는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결단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분주하게 하는 일들 때문에
예수님의 곁에 앉아 기도하고 말씀보는 시간을 빼앗긴다면
주님이 마르다의 이름을 부르셨듯이 우리의 이름도 부르실 것 같습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은 기도를 통해 열리고 말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분주한 손길과 발길을 멈추고
예수님의 곁에 앉아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시간을 만들어 내면 좋겠습니다.
너무 많은 일 때문에 걱정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 앞에 앉아 기도하는 한가지를 먼저 선택하는 오늘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의 마음과 삶의 모습은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며
기도줄을 다시 붙잡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 주는 위대하며 능력이 많으시도다 그의 지혜 무궁하며 인자는 영원하도다
상한 자들 고치시며 상처를 싸매시도다 별들의 수를 세시며 이름을 붙이셨도다 “(비 준비하시니 _복음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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