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떠오르면
- Sister Mary

- Feb 1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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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는 내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시간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범한 하루 하루가 우리에게는 소중하고 그 하루라는 시간속에서 같이 하는 사람이 또한 소중한 것입니다. 지난 날이 후회가 된다고 해서 어제로 돌아갈 수 없고 나의 미래의 길에 생길 일들을 미리 알수 도 없습니다. 다만 미래를 향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누가 인생을 쉽다 할 수 있으며 어느 누가 완벽한 인생을 살아 갈 수 있을까요,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건강한자나 약한자나, 지위가 높은 자나 낮은자에게도 누구에게나 무겁고 어려운 삶의 무게는 있는것입니다.
저는 요한복음 14장 : 6의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는 말씀을 자주 묵상을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신 참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 내가 곧 길이요 " 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길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에수님께서 길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험한 광야길에 들어가게 될지라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는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광야같은 인생길을 두려움없이 걸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시로 우리 자신을 살펴 보아서 길이신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 스스로가 나의 주가 되어서 내가 원하는 길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출애굽 한 후의 이스라엘의 광야생활과 가나안땅에 들어간 후의 전쟁 이야기들은 그저 이스라엘의 역사이야기인데 굳이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과 연관을 시킬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 할 수 도 있겠지만, 그들의 삶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므로 오늘을 사는 성도의 삶에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민수기 9:22 을 보면 "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힘들게 장막을 쳤는데 이틀만에 구름이 성막 위에 떠오른다면 당연히 장막을 걷어 구름을 따라 진행을 해야 하겠지만, 장막을 치자 마자 다시 장막을 걷어 행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에 대해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일 년이 지나도 구름이 머물러 만 있다면 약속하신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지 않고 왜 이렇게 광야 한 가운데
꼼짝못하게 두느냐고 불평하는 것이 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당연한 것 같은 불평을 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 참 성도의 삶의 태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이 없음으로 인해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매일 내려주는 하늘 양식 만나가 지겨워서 고기가 먹고 싶다고 원망하였습니다.
우리는 물이 없어 목이 말라 죽을 것 같은 때에 반석에서 물을 내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원망하지 않는 성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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