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 Sister Mary
- Mar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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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때때로 해보는 질문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를 믿는 믿음이 우리의 삶과 일상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
우리의 신앙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예수를 믿을 때는 천사같이 살아보려고 애를 써보고
그렇게 못되더라도 흉내라도 내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를 잘 믿는 착한 사람이 되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늘 확신에 차고 평안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갈등과 낙심이 생기고 관계의 단절을 경험할 때,
그리고 내 앞에 열려 있던 문들이 꽝 하고 닫혀버릴 때,,,
그동안 내가 믿어왔던 하나님조차 멀리 보이고
기도는 응답없이 메아리로 되돌아 오는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언제나 확신에 차고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던 것인가,,,
내가 믿는 예수가 모든 것의 완성이고 충분한 답이라면
나의 신앙이 잘못 되었다는 것인가 하는 고민과 혼란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고민의 해답을 찾는 저에게 어느 날 주님이 주신 것은
‘예수 안에’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인간의 한계성 안에 갇혀 있는 나에게서,
믿을 수 있는 그럴듯한 근거와 실체를 보여주는 세상의 것들과 어떤 사람에게서,
길과 정답을 찾지 말고 예수 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마르다를 향한 예수님의 초청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어떤 마을로 들어갔을 때
마르다라는 여인이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 들였습니다.
마르다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바쁘고 분주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주님, 저 혼자 이 모든 접대를 하는데 제 동생이 저를 거들지 않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41,42)
마르다는 예수님과 같은 공간 안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염려와 근심 가운데 있었고
예수님께 불평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과 그녀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의
본질적인 차이에서 나온 결과라고 저는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예수 그리스도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해보라는 도전으로 이해가 됩니다.
마르다를 향한 예수님의 초청은
예수님 주변에서 분주하게 다니지만 말고 예수 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먼저 들으라는 것입니다.
먹는것과 마시는 것은 우리가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다른 몇가지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만을 쫓아서 살게 되면 걱정 근심은 우리를 따라 다닐 것입니다.
이러한 걱정 근심에서 자유하게 되려면
내가 예수 안에 있다면 그것들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가능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누가복음 12:25,26)
지붕을 뚫고서라도 예수님 앞으로
누가복음 5장에는 중풍병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가르치고 계실 때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침대에 누인 채 메고 와서 예수님 앞에 데려가려고 하였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붕을 뜯고 구멍을 뚫어 병자를 침대째로 예수님 앞에 달아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누가복음 5:20)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중풍병자는 일어나 침상을 들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걸어나갔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누가복음 5:24)
살다 보면 우리에게 괴로운 일들이 생깁니다.
가난과 실패도 생기고
병이 들기도 하고 외로운 형편에 처하기도 합니다.
땅을 치게 낮아졌으니 이제는 살려 주시겠지, 이제 올라가게 해 주시겠지 하는 데도
상황은 쉽게 바뀌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라도
예수님 주변에 몰려 있는 군중들 가운데 머물지 말고
막혀 있는 지붕을 뚫고서라도 예수님 앞에 나아간다면
죄사함과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과 제가
예수님의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듣는 자리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고난 중에 있는 우리의 기도줄이 닿아 있는 그 사람들의 침상을
메고 주님 앞으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있다면
우리가 예수 앞에 나간다면
그분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자유와 기쁨 베푸시는 주께로 옵니다
병든 내 몸이 튼튼하고 빈궁한 삶이 부해지며 죄악을 벗어 버리려고 주께로 옵니다”
(새찬송가 272 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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